1년에서 반년쯤 사이였던가, 미국의 빅테크에서 대규모 lay off(해고)가 발생했다.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짤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소개되었고 유트브 숏츠에서는 살아남은 자들의 지난밤의 공포와 떠난 사람들의 자리를 바라보는 심정을 고백하는 영상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었다. 그때 그 시건의 중심에는 AI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항상 한박자 늦는다
미국은 AI가 가장 발전했던 나라였고, 지금도 세계 정상급 모델의 2~4개 정도는 미국회사에서 개발하고 미국의 서버에서 운용되고 있다. 3개월쯤 전까지만해도 앤트로픽의 클로드가 SW를 휩쓰는 바이브 코딩의 시대를 유행했고, 그에 힘입어 많은 회사들이 AI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성능은 놀라웠다. AI 하나를 손에 쥔 시니어 엔지니어가 주니어 없이 혼자서 4~6명의 몫의 일을 뚝딱 해치웠기 때문이다. 회사는 고민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비싼 인력을 많이 운용하는게 과연 이득일까? 그 결과물이 바로 미국에서 있었던 대규모 lay off 사건이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이야기가 조금 바뀌어서 다시 사람을 데려온다는 말이 들리긴 하지만 그래도 짤렸던 모든 사람들이 돌아오진 않는다. 즉,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게 예전 만큼은 아니라는 의미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한박자 늦게 이런 열풍이 불어왔다. 이미 커뮤니티 사이에서 바이브코딩이 유행했고, AI가 쓴 것 같은 글들과 앱들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 특성상 해고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신입의 채용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에타 등의 커뮤니티 반응들을 보면 컴공은 거의 절망 수준의 아수라장이 된 듯 싶다. 주니어가 취업해서 나아갈 길목이 터무니 없이 좁아져 버린 것이다. 코로나 시절만 하더라도 컴공은 전화기(전기, 화학, 기계)를 따돌리고 독보적으로 떠오른 학과였는데 불과 5년만에 상황이 완전히 반전해 버렸다.
반도체 설계는 AI가 잘 할 수 없다. 라고 믿었다
반도체 업계는 AI가 진입하기 힘들거나, 혹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학습량이 절대적으로 적을 뿐더러, 기업들이 반도체 설계 코드를 기밀처럼 다뤄왔기 때문에 학습 할 수 있는 양질의 코드가 없기 때문이었다. 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었다.
EDA의 대표 3사들도 작년(2025년)까지만 하더라도 자체 AI 모델을 만들어서 본인들의 툴에 집어 넣는 야망을 꿈꾸었다. 하지만 불과 1년만에 anthropic이나 openAI의 모델 발전속도는 말도 안되게 성장했고, 그들이 만들어낸 모델을 전문 기업도 아닌 곳에서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2026년에 다녀온 Siemens, Cadence의 행사에서 그 바뀐 기조가 피부에 와 닿았다. (Synopsys는 다음주에 행사가 있어서 아직 그들의 반응은 보지 못했다.) 우선 EDA 3사 모두 자체 AI 모델은 접은 듯 보였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개발해서 제공할게, 라는 말은 어느새 우리는 Agent랑 Skill을 제공하고, MCP를 제공해서 클라우드에서 설계 검증을 할 수 있게 했어. 외부 AI 모델을 써도 좋고, local LLM을 설치해서 써도 괜찮아! 로 바뀌었다.
1년만에 그들의 입장이 바뀐 것도 놀라웠지만 바뀐 정책을 토대로 SoC의 개발주기를 6개월 까지 줄이겠다는 포부는 허풍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일단 설계부터 P&R까지, 모든 과정에 AI가 도입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로인해서 검증 셋업에 수개월이 걸리던 것이 하루만에, 검증 시나리오 수립에 수주가 걸리던 것이 이틀, 전체 검증에 몇 주가 걸리던 것이 고작 일주일. 이런식으로 개발 기간이 대폭 감소되었다. 또한 다양한 estimation이나 STA, P&R, floorplan 등에서 AI를 이용한 방법들이 소개되면서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 optimize된 결과물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 어쩌면 HW도 AI가 점령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또한 AI를 이용해서 SoC를 설계하고있다. 회사에서 선행 선두로서 테스트 파일럿으로 시도해 본 것이지만 생각보다 너무 잘 만드는 그 모양에 어느새 나도 AI에 많은 양을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설계 속도가 말이 안된다.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아키텍처를 구상하고, I/F를 정리해서 bottom-up 방식으로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이 2~3일이면 뚝딱하고 끝나버렸다. 물론, 그 이후에 수정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거기까지 가는데 사람이 하면 몇 개월이 걸리는게 끝나 버렸다는 것은 SW 업계에서 그들이 겪었던 공포를 내가 똑같이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완벽하진 않다. 일단 AI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편하게 설계를 진행했기에 최적화 라던가 구조상 더 path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을 SW 적인 관점에서 설계하는 부분이 많이 보였다. 그랬기에 어느정도 코드와 구조를 볼줄 아는 사람이 직접 지적을 하면서 구조 변경을 직접 하거나 혹은 그마저도 시켜가면서 수정을 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모양. 어디서 많이 본것 같지 않나? 바로 SW에서 시니어에게 AI를 쥐어주고 주니어 없이 일을 하는 그 모습이랑 완벽히 똑같았다. 코드를 볼 줄 알고, 이해 할 줄 알고, 방향을 제시 할 줄 아는 사람에게 어느정도 기능하는 AI를 손에 쥐어주니 그 아웃풋이 말도 안되게 상승하는 모양세를 보였다.
이게 더 발전한다면 아마 나조차도 신입을 뽑아서 가르키는 것보다는 경력직을 뽑아서 AI를 들려주는 편이 더 깔끔하다고 생각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사람은 아직도 거부감이 있다.
회사에서 가만 보면 AI를 내가 적극 권장해도 쓰는 사람이 많이 없다. SW 쪽은 엄청 쓰면서 작업량을 줄이는데 아직도 우리팀은 AI가 어떻게 HW를 설계하냐면서 무시하는 경향이있다. 어떻게든 내가 만든 코드를 흠집잡고 여긴 이래서 안 돼, 이러면 못 써. 이런 식으로 방향을 몰고 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 부분은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부분이고, 섣불리 혼자 리뷰하면서 지적하면서 잘못 됐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진심어린 조언이라기 보다는 AI의 약점을 부각해 사람이 필요하다는 자리에 대한 어필에 가까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들이 한두명일까? 20명 가까이 되는 우리팀에서 AI를 써서 설계하는 사람은 나까지 단 둘. 나머지는 AI를 검색기 대용으로 질문하거나, 자료를 찾거나 하는 쪽으로만 주로 사용할 뿐이고 설계에는 많이들 사용하지 않는다. Open source 들을 가져와서 테스트 해보려는 사람들은 AI를 사용하기는 하면서 좋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설계는 다들 꺼려하는 분위기다.
아마, 사람들이 꺼려하는 이유는 첫째는 폐쇄망에서 우리의 본래 RTL을 돌릴 수 없다는 점이 클 것이다. 왜냐면 AI 회사는 학습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 그 서버에 코드가 올라간 것이 적발 된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보호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절대 물리지 말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는 인터넷이 끊긴 Linux가 아니라 인터넷이 연결된 Window에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window는 EDA사들의 툴을 설치 할 수 없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때문에 AI 모델들을 window에서 돌린다면 RTL을 설계해도 정확한 테스트를 위해서는 폐쇄망으로 옮기고 테스트하고 log를 전달하는 식의 불편함이 많이 존재한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verilator를 설치해서 검증하고 결과물을 마지막에 한두번만 다시 테스트 하는 식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그냥 simulator를 하나 만들어서 혼자 사용하고있다. 상용 툴보다는 느리지만 그래도 compile, elab 그리고 실제 simulation이 동작하는 run의 단계까지. 원하면 VCD dump도 가능하게 되어있어서 생각외로 잘 만들어진 것을 AI한테 쥐어주니 윈도우나, WSL에서 우분투 환경에서 잘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여튼, 이런 불편함이 사람들에게 AI를 설계에 사용하는 것에 불편함으로 인해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주니어들은 자기들의 일자리에 대한 걱정 때문에 꺼려하는 것도 있다. 아직 그들은 구조를 볼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손으로 해보고 고민도 하고, 헛짓도 해보면서 경험을 쌓아서 이런 것들을 보는 눈과 경험을 키워야 하는데 AI에 의존해버리면 그런 것들을 성장시키는 기회를 잃을 것을 본인들도 알아서 잘 쓰지 않으려는 경향이 보이는 것 같다. 아니러니 하게도 그런 이유로 주니어보다 시니어들이 더 업무도 빨리 많이 하고, 지식의 습득도 빠른 시대가 됐다. 언젠가는 이 격차가 다시 좁혀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시니어들의 몸값이 가장 빛나는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6개월만에 달라진 대화
전직장 동료들과 만나서 술한잔 할때의 이야기도 6개월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6개월 전만 해도 RTL 설계는 회의적이었던 모두였는데 6개월 만에 만난 그들은 업무에 AI가 없으면 안된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확 바뀌어 버렸다. 심지어 waveform을 dump 한 것을 사람이 안보고 AI에게 분석을 시키기 까지 한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우리 분야도 점령군의 깃발이 꽂힌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조금 과한 케이스도 많이 보이는데 Jira에 글 쓰는 것, 댓글 쓰는 것조차도 AI한테 전부 의존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이 점점 필요 없어 지는것 아닌가 싶은 공포감도 느끼게 하지만 너무 인간미가 없다는 느낌도 많이 받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검증의 분야는 AI가 대체 불가의 성능을 내는 것 같다. UVM 환경 조차도 2~3일만에 만들어 버리고, 테스트를 1주일 만에 끝내버리는 그 기괴함은 정말 사람이 따라가기 힘든 영역인 것 같았다. 설계는 의견이 조금 갈리는데 data path랑 control path에 대한 것으로 구분 할 수 있었다. data path는 말 그대로 데이터가 지나가는, 일종의 연산만을 위한 logic을 뜻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AI가 정말 깔끔하게 사람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 하지만 control path는 FSM이나 여러 제어를 위한 신호들을 다루는 것인데 이걸 LLM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더 복잡 할 수 있기에 이런 정밀한 제어는 사람이 하는 쪽이 더 낫다는 의견이 있다.
일단 나는 중립적으로 둘다 AI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만 하여튼 저런 의견도 틀린 것은 아닌것 같다.
EDA사들은 P&R 단계에서도 AI를 쓰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 부분은 나도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synthesis optimize를 정말 잘 해줘서 사람이 쥐어짠 것보다도 2%정도 더 area를 줄이는 AI의 스토리라던가, cell을 더 적게 사용하는 쪽으로 timing closer를 한다던가, 파워 분석이나 열 분석을 통한 개선이라던가.. 본래라면 수개월씩 걸리는 일들에 AI가 들어가 그 기간을 대폭 감소시키고 있다.
과도기인 지금이 오히려 기회인 시대
아까도 얘기했지만 시니어들은 지금이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도기인 지금이야 말로 그들의 경험이 AI를 앞서가는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에 안목과 경험으로 구조 개선의 도구로서 AI를 휘두룰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주니어 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미래엔 모든 일자리가 없어 질 수도 있는 법. 기회가 왔을때 손에 쥔 칼을 휘두르는 것 또한 아마 어떤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축복이자 저주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우린 우리 나름의 힘듦도 있었기에, 그들도 언젠가 그들 나름대로 본인들의 장점을 가지게 될 날이 있지 않을까 싶다.
꼭 시니어만 좋은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머리가 굳은 그들을 대신해 AI를 이용한 선구자가 되는 길도 분명 존재 할 것이다. 그 옛날 산업혁명 시절, 영국에서 있었던 러다이트 운동이 요즘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 같은 시대다. 아마 산업혁명을 지나 기계가 당연시 되었던 시대가 온 것 처럼 어쩌면 이런 불편함, 혐오감, 위기감을 느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 시대도 언젠가 자연스럽게 AI를 받아 들이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다.